꼬꼬마 의사 이야기/조금씩 면허에 잉크가 말라가는 레지던트

아니 36시간 연속근무를 한다고요? 당직 이야기

infantdoc 2024. 7. 5. 17:57

 

이번에는 의대생때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당직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려고 한다.

다른 직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인턴, 레지던트(전공의) 의사들은 당직과는 정말 뗄레야 뗄 수가 없다.

 

나도 의대생때는 선배들이 당직이 힘들다. 당직 다음날 힘들다. 하면 아 ~ 그런가보다 했지 제대로는 모르고 있다가,

인턴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인계 받을 때 우리에게 당직은 36시간 연속 근무 (과장 1도 없이) 라는 걸 알고 아니...정말..? 이게 가능하다고..?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의사 (전공의, 인턴) 당직 시간은요..? 그럼?

 

주간근무 12시간(보통 오전6시~ 저녁6시) 후에 야간당직(저녁6시~ 오전6시)까지 한 뒤에, 퇴근!!! 이 아니라 다시 주간근무(오전6시~저녁6시) 하고 퇴근이다... 즉 예를 들어 "나 수요일에 당직이야" 하면 수요일 오전6시에 출근해서 목요일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것이다..!

 

이것도 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되어 주간 최대 80시간이 정해져있고, 연속근무를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서까지는 하지 말아라 라고 정해진 이후 많이 나아진 것이고, 우리 저~ 위 선배때에는 100일 당직(100일 내내 당직서는것)이 당연한 것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당연한듯이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물론 36시간만 일하고 퇴근하면 정말 다행이다..^^ 

 

 

그럼 당직이랑, 주간근무는 무엇이 다른가요?

 

이건 인턴, 전공의(레지던트) 각각 다르게 설명을 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내과 전공의(레지던트) 시점에 맞추어 이야기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노티'와 '오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일반 통합적으로 말하자면, 주간(오전6시부터 저녁6시까지)에는 병원에 의사가 많고, 모두가 출근해있지만 24시간 내내 모든 의사가 상주할 수는 없고, 보통 주간에 회진도 진행하고, 처방 등 모두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녁~밤시간에는 (평온하다면) 추가적으로 오는 '노티'만 해결하면 된다.

 

'노티'는 Notify라는 영어에서 따온 은어?이고, 간호사 선생님이 의사에게 할수도, 우리가 교수님께 할수도 있다. 환자 상태를 notify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생님, 지금 708호 어제 NSTEMI로 입원한 78세 여자환자가 HR(심박수가) 120회에요". "APN으로 입원해서 IV anti 치료하고 있는 환자가 체온이 38도 에요"라고 병동 간호사샘들이 환자상태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의사는 이걸 듣고 추가적으로 상태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필요한 추가 '오더(Order)'를 한다.  

예를 들어 앞에 심박수가 120회라는 노티를 내과 당직 전공의가 받으면,  

"어제 어디 시술을 했나요? 스텐트는 넣었나요? 원래 baseline 질환이 있나요? 환자 증상은 있나요? baseline HR(보통때 심박수)는 얼마인가요?" 등을 물어볼 수 있겠고 무엇보다도 

"인턴쌤 불러서 EKG(심전도) 찍고 노티해주세요" 라고 할 것이다. 

 

그럼 병동 간호사샘은 인턴에게 전화해 "인턴선생님 저희 환자 HR가 120회여서 심전도 찍어주세요" 라고 할것이고, 

당직 인턴은 환자에게 가서 심전도를 찍을 것이다.

 

 

물론 주간에도 똑같은 프로세스로 일들이 진행되지만, 주간은 좀 더 폭넓게 많은 일들을 시행하고(추후에 다른 글에서 또 설명해보겠다), 야간에는 비교적 환자들 상태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중간중간 일어나는 큰 변화가 있다면 이에 대해 노티하고, 해결하는게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당직마다 차이가 매우 크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헬(Hell)" 당직도 있을 수 있고, "꿀"당직도 있을 수도 있다.

밤에 다행히 병동 환자에게 큰 일이 없으면 큰 노티가 없을 수 도 있다. 그렇다면 밤에 잠을 잘 수도 있다!

하지만 소소한 노티가 계속될수도 있고, 나는 3차 대학병원에서 일했기 때문에 "환자 SpO2가 80이에요" "환자가 Seizure해요" 등.. 생사를 오가는 일이 밤에 많이 생긴다. 그렇다면 정말 단 한숨도 못잘 수 도 있다.

 

과마다 다르지만 내과는 중환자가 많고, 그래서 생사를 오가는 경우도 많다. 급하게 응급시술(중심정맥관 삽입, 기관삽관)을 해야하는 경우도 생기고, 이런 경우에는 주치의가 아니지만 보호자에게 전화하여 설명하고, 동의서받는 과정도 필요하다

 

낮에도 이런일이 물론 자주 생기지만, 낮에는 인력이 많다. 도와줄 교수님들도 있고, 동기들, 선후배도 많다. 하지만 당직때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거나, 나만이 이 상황을 오롯이 해결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초반에는 정말 무섭고, 내가 못해서 환자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에 정말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버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었던건 (지금도 성장중이지만) 당연히 동기! 선배!후배! 덕분인 것 같다. 갓 들어온 1년차는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 아직 한번도 해본적이 없고, 배운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는 선배년차들과 함께 당직을 서면서 어깨너머로 물어보고, 배우면서 상황을 해결해나간다. 물론 그래도 해결이 어렵다고 하면 새벽에도 담당 교수님께 전화를 했던 적도 당연히.. 있다. 

 

당직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어제 당직선 동기에게 아침에 출근하면서 항상 의국에서 물어봤던 것 같다. "어제 당직 어땠어?" 라고 하면 보통 침대에 누워서 잠시 휴식 취하고 있던 동기가 우리 출근하는 것을 알람삼아 일어나곤 한다.

 

함께한 시간이 지날수록 동기가 어떻게 있는지만 보아도 어제 당직이 힘들었구나... 어제는 병동이 평온했구나..를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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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하면 잠을 제대로 못잔다. 특히 입원환자가 많고 중환이 많은 내과전공의라면 더더욱.... 잠을 제대로 못자고 한숨도 못자는 경우도 꽤 있지만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 

 

너무너무 피곤할때도 많고, 건강도 많이 안좋아졌던 것 같다. 36시간 마치고 퇴근하면 다행이지만 내 담당환자가 나빠지거나, 처방에 보완할 점이 있거나, 차트 정리가 필요하면 36시간은 무슨.. 40시간 연속 근무 후 퇴근한 적도 정말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과가 기피과인것 같다. 다른 과를 절대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입원환자가 별로 없거나 중증도가 낮은 과들(예를들면 피부과, 성형외과, 등..)은 같은 당직이라도 노티 수가 압도적으로 적다. 또 노티의 중증도 자체도 다르다. 내과는 정말 말그대로 '생사'를 오가기 때문에 당직의 무게가 감히 다르다고 말해보고 싶다.

 

그렇지만 각자의 힘듦이 다 있다. 해낼 수 있는 이유는 당직때 뛰어다니며 환자 처치를 해서 환자가 좋아졌을때, 그리고 동기들과 으쌰으쌰하면서 서로 잘 되지 않는 술기를 도와주며 해결되었을때,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쓸모있다는 존재라는 느낌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순수한 마음으로 이러한 소소한 기쁨과 보람으로 해나가는 전공의 생활이다. 

 

(이러한 꿈을 지금은 누군가가 처참히 짓밟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