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가 마주하는 사람들
전공의를 하다보면 여러 사람을 마주친다.
다른 직장생활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고, 특히 더 많은 사람을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교수님, 전공의 선후배, 다른과 전공의 선생님들, 인턴 선생님, 실습학생, 간호사 선생님, 의료이송기사님... 등등 정말 많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여기에 다양한 환자 및 보호자분들은 덤이다.
오늘은 여기서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실습학생과 인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전공의가 본 실습학생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내 실습학생때 이야기가 더 들어간 것 같다.. 인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로 다시 다루어보아야 할 것 같다.)
실습학생..? PK? (정확한건 이전 글 참고)
의과대학은 이전 글에도 언급했듯이 총 6년제이고, 예과 2년, 그리고 본과 4년 이렇게 이루어진다. 보통 본과 2학년때까지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대부분의 과목을 모두 배운뒤(모두 배운다! 다들 내과의사면 내과만 배우면 되는거 아니야? 하지만 아니다. 이전 글에 자세히 언급해두었다.) 본과 3학년때부터 병원으로 실습을 나오게 된다.
정확한 실습과정 구성은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학교를 기준으로 설명한다면 본과 3학년때는 흔히 말하는 '메이저'라 불리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과정을 1년내내 나누어 실습을 하게 되고, 본과 4학년때는 흔히 말하는
'마이너' 과 피부과,정형외과,가정의학과 등등.. 중 본인이 관심있는 과목을 선택에서 실습을 돌거나 의원에 파견을 가거나, 2차병원 응급실을 경험해보거나 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본과 3학년 실습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내과라고 할 수 있다. 내과는 모든 과의 기본이 될 뿐더러 범위도 방대하기 때문에 거의 3달가까이 실습을 하게 된다. 3달 안에서는 보통 2주씩 내과 안에 속해있는 여러 분과(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호흡기내과, 신장내과 등등..)들을 돌아가면서 실습을 하게 된다.
의대실습학생으로 시작하기
내 학생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입장에서는 decision을 내려도 환자에게 직접 영향을 가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책임이 하나도 없는건데.. 그땐 처음에 이런 날것(?)의 상태로 병원에 냅다 던져진다는게 정말 무서웠던 것 같다.
처음 실습은 신장내과였는데, 신장내과는 본과 2학년때도 거의 첫학기에 배웠던 내용이라 내용도 많이 잊어버렸을 뿐더러 내용자체도 특히 어렵고 방대해서 도대체 어떤 부분부터 먼저 공부해가야할지 몰랐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매일 오전 회진때 전공의 선생님들이 환자보고를 할때 우리도 환자 1명씩 맡아 보고하도록 했는데 그 1분도 안되는 시간이 나에게는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했다는 것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신장내과를 돌고 있던 전공의 선생님은 키도 크시고 화장도 예쁘게 하시고, 염색머리에 구두를 신고 다니시는 여자선생님이셨는데, 병원에서는 흔치 않은 캐릭터라 그때도 인상깊게 기억에 남았는데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전공의가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당연히 신발은 크록스에 화장은 절대 하지 못하고 매일 피곤에 쩔어서 지내고 있는 내모습과 더 대조되어 선생님이 정말 더 대단해보인다.) 겉모습도 화려하시지만 일도 정말 시원시원하게 잘 하시고 정말 하나도 모르는 무지한 학생이 보기에도 교수님께서 전공의선생님을 정말 신뢰하고 같이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서 나도 저렇게 본인을 가꿀줄도 알고 능력도 인정받는 전공의가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전공의선생님께서는 본인도 너무 바쁘시기 때문에 학생에게는 크게 신경써주실 여유가 전혀 없어보였고, 우리학교 선배도 아니었어서 그런지 우리에게 애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가르쳐주시려는 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선생님께서 잘못되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에게 불친절하다거나 혼내시거나 하신 건 전혀 없었다. 그 뒤에 돌았던 다른 분과 실습에서는 우리학교 출신 선배이신 선생님을 만났는데 먼저 커피도 사주시고, 케이스 발표 하기 전(학생때는 매주 시작할 때 한명의 환자를 받아 그 주가 끝날때는 환자의 전반적인 진단, 치료에 대해 케이스 발표라는 것을 교수님 앞에서 한다) 피피티를 먼저 직접 봐주시면서 의학적으로 틀린 부분을 짚어주신다거나, 교수님께서는 이런 감별진단을 넣는 것을 좋아하실 것 같다라는 식의 조언을 해주셨다. 정말 바쁘실텐데 애정이 느껴져서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공의가 되어 마주한 실습학생들
정말 옛날 일같이 느껴지는 pk 생활이어서(사실 실습이라기보다 PK때라고 칭하는게 더 편한다) 졸업한지 2-3년 지난 다음 3월이 되어 실습학생이 온다고 했을 때 머리를 한대 띵 맞은 기분이었다. 기억 저~편에 있던 실습학생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그떄 한없이 정말 커보였던 전공의라는 포지션에 내가 지금 자리한다고..?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시험공부에 최적화된 공부를 하고 갓 실습하러 나온 학생들이 나보다 어쩌면 교과서적인 지식에 더 앞서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것을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야하지?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ㅋㅋ 하지만 막상 병아리같은(!) 학생들을 만나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사이에 많이 성장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니 눈빛부터 똘망똘망한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 입장이 되어보니 눈빛부터 다르다고 교수님들이 말씀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더욱 이해가 되었다. 지식적인 부분은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학생은 학생이기때문에 크게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열심히 정말 하려고자 하는 열정과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이 정말 예뻐보이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 실습나온 학생은 2명이 한조로 온 여학생들이었는데 꼭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교수님께서 회진을 마치시고 난 뒤에 그냥 떠나도 되지만 나는 괜스레 감정이입이 되어 학생들에게 케이스 발표할 환자는 받았는지, 환자와 이야기는 해보았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학생들 눈빛에 너무 감사하다는 것이 느껴져서 나도 덩달아 EMR(전산) 확인하는 방법, 처방은 어떻게 하는지, 전산에 어떤 부분에 들어가서 확인하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또 배정받은 환자는 대략적으로 어떤 환자이고, 어떤 부분을 중심으로 보면 될지에 대해서도 귀뜸을 주었다.
전공의와 학생의 차이점은 아마도 '핵심'을 안다는 부분이 다르다고 느껴져서 그러한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환자의 중요한 포인트를 잘 보지 못하고 곁가지에서 헤매는 시간이 많았다고 내가 느껴졌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그러한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바쁘지만 언제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아도 된다고 말을 남기고 다음날 회진에서 학생들을 또 만났다. 회진이 끝나고 헤어지려는 순간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에게 어제 내가 가르쳐준 처방창 보는 방법을 보고 처방된 약들을 보았는데 이러한 약들은 왜 처방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다. 나도 바빴지만 어제 내가 알려준 부분에 대해서 들어가서 확인해보고 고민해보고 물어본다는 것이 너무 예쁘고, 기특해서 또 나도 신나서 내가 아는 한 설명해주었던 것 같다.
금요일이 되어서 학생들이 케이스발표를 마치고 나를 마주치고 정말 감사하다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데, 전공의를 하면서 뿌듯했던 순간 중 하나인 것 같다. 그 뒤에도 많은 학생들을 만났지만, 실습은 얼른 끝내고 빨리 집에 가기만을 바라는 친구들도 보았고, 알려주려고 해도 흔히 말하는 동태눈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물론 나도 학생때 얼른 집에 보내주는게 제일이라고 우리들끼리 이야기할때도 많았지만, 실습하는 그 순간만큼은 하나라도 더 배워가려는 학생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다시 반성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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